교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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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만세운동적극참여

1919년 고종 장례 참석자 서울에 간 심두섭 김재화 등이 3·1 만세의거를 보고와서 중심이 되어, 진주는 장날인 3월 18일 정오(12시)에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시내 다섯 곳에서 동시에 만세가 시작되어 밤늦게 까지 이어져 많은 사람이 검거되었다. 이튿날에는 광림학교 악대부 졸업생들이 앞에서 연주하며 시위가 계속되어 교인, 학생, 농민, 노동자, 기생, 걸인까지 참여하였다. 21일까지 나흘 동안 계속되었고 그 후에 주위 문산면, 반성면, 수곡면 등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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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대안면에서 비봉산 기슭(당시 옥봉리으로 옮긴 예배당(o안은 교회종탑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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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진주 시장 나무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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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진주 장날 시장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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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교회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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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서울에서 있었던 여학생 만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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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서울에서 있었던 시민들의 만세시위